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야기
26세의 나이에 진보된 세상을 뒤로 하고 오직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이 땅을 찾아와 이 땅으로 하여금 주님의 복음을 알게 한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처음에는 인도 선교사로 갈 생각을 하고 많은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브룬스윅 신학교 안에서 선교세미나가 열렸는데, 그 세미나에서 일본에서 선교하던 앨트먼(Altmans) 목사님이 은자의 나라(the Hermit Kingdom)에 관한 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은자(隱者)의 나라는 한국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 보고에 이어서 앨트먼 목사님은 한국이 지금 문호를 개방하였는데, 1,200만 되는 인구에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못했으니까 앞으로 한국선교를 위해서 미국교회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한다고 아주 열변을 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세미나 이후 일년 동안이나 한국선교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고, 어떤 교회도 선교사를 보내려고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해외선교의 지도급 인사들조차도 한국에 나가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글을 쓸 정도였습니다. 그 때에 인도 쪽을 생각하며 선교를 준비하고 있었던 한 청년의 마음 속에 자꾸만 "왜 너는 한국에 가지 않느냐?" 하는 음성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제 한 교회의 청빙을 받고 인도 선교 쪽으로 마음을 정하고 그 청빙 수락 편지를 써서 봉투에 넣고 막 우체통에 집어넣으려는 순간, 그 청년은 그 신비한 음성을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갈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럼 한국은 어떻게 될까?"
바로 이 신비한 음성을 듣고 그 청년은 마침내 한국행을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청년이 26세의 나이에 진보된 세계를 뒤로 하고 이 땅을 찾아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던 언더우드 선교사입니다. 그런데 언더우드가 한국으로 오기를 결심하였을 때 한 가지 큰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결혼 문제였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할 때 언드우드는 25세였고, 곧 결혼할 약혼녀도 있었습니다. 그는 약혼녀에게 당신이 나와 결혼하면 곧 나와 코리아로 갈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말에 약혼녀가 언더우드에게 질문했습니다. "그곳은 무엇을 먹고 사나요?", "모릅니다.", "그럼, 그곳에는 병원이 있나요?", "모릅니다.", "°그럼, 도대체 당신이 아는 것은 무엇인가요?", "내가 딱 한 가지 아는 것은 그곳에는 하나님을 모르고 있는 2,000만 명의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대답으로 언더우드는 약혼녀로부터 파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1885년 4월, 서울에 도착한 26세의 총각 언더우드는 3년 동안 배우자를 위해 기도한 결과 한국에 의료선교하러 온 8년 연상의 의사 홀톤 양과 고종황제의 주례로 결혼하였습니다. 오늘 언더우드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도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정말 가슴이 뜨거워졌으면 좋겠습니다. 한 영혼 때문에... 다음 주일 작정합니다. 나도 한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