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를 배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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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00일 마침 새벽기도회중 지난 6.27(금) 새벽에 설교한 것을 요약한 것입니다.



본문: 열왕기하6:1-33.



1. 오늘의 말씀

오늘의 말씀은 아람군대가 엘리사가 있던 이스라엘 도단성을 포위했을 때 이스라엘이 겪은 곤궁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람은 엘리사 한 사람을 죽이려고 막대한 군대를 동원해 도단성을 겹겹이 포위했습니다. 그로 인해 도단성의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15절 말씀대로 모든 백성들은 “우리가 어찌할까” 탄식하기 시작했고 엘리사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 눈을 열라

이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목숨 걸고 전쟁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일이었습니다. 아람군대에 항복을 조건으로 타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가 포로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 백성을 도우셨습니까? 무엇보다 그들의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신령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사는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17절, “저들의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3. 별세를 배우라

눈을 열고 하늘을 볼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늘 주시는 메시지는 별세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별세는 이중표 목사님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특별한 시대, 특별한 사람에게 주신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메시지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습니다. 별세는 죽는 것입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이 죽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는 것입니다. 억지로 죽는 것은 타살입니다. 내 힘으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 죽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죄가 있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었습니다. 죄가 없어도 죽었는데 죄가 있다면 더 죽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예수 안에 죽지 못했습니다. 죽었다면 억지로 죽었습니다. 억울하게 죽었고 두고 봐라 하고 죽었습니다. 이것은 별세적 죽음이 아닙니다. 저는 제가 많이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할수록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 기도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하셨고 앞으로는 어떻게 죽을까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정말 낮아지고 깨어지고 겸손해져서 원수의 발까지도 씻을 만큼 죽을 수 없을까 저는 지금 그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바라시는 것은 판교이전에 우리가 죽는 것입니다. 예수 닮은 인격과 신앙을 갖지 않았는데 큰 교회 되는 것은 오히려 재앙입니다. 하나님은 판교시대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깨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4. 하늘을 보라

우리가 낮아져서 별세를 배우면 하늘이 열립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눈을 열고 하늘을 보자 우리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지 않습니까? 수많은 불말과 불병거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지 않습니까? 하늘은 아무 때나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이 열려야 하늘이 열립니다. 우리가 무릎 꿇고 봐야 할 것은 언제나 하늘입니다. 그 하늘은 우리에게 믿음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알고 계신다는 믿음, 하나님은 가장 좋은 때와 방법으로 응답하신다는 믿음, 하나님의 지혜는 측량치 못하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방법이 있다는 믿음, 우리가 죽고 별세한 후에는 반드시 부활과 영광이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을 갖게 합니다.



5. 끝까지 정도로

결국 하나님이 아람사람들의 눈도 여셨습니다. 눈을 열고 보니 사마리아였습니다. 원수를 갚자는 사람들의 말에 엘리사는 오히려 그들을 먹이고 돌려보내자고 했습니다. 이것이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정도를 걷는 교회와 성도들 찾고 있습니다. 예수 닮은 제자, 정도를 걷는 성도, 낮아지고 낮아져 원수까지 사랑하는 별세의 사람,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훈련하고 계십니다. 주 뜻대로 이루어지기를!